2017
자서전 ‘아버지의 치부책’ 출간한 이기현 ㈜현문자현 대표이사
“나의 인생에서 천리마는 인쇄!”
이기현 ㈜현문자현 대표이사가 최근 ‘아버지의 치부책’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자서전을 통해 ‘인쇄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담는 그릇이며, 인쇄인은 역사 디자이너’라고 강조하는 이기현 대표이사를 장항동 현문자현 대표실에서 만났다. 임남숙 기자  
인터뷰 · 탐방  |  인터뷰


 

이기현 현문자현 대표이사가 최근 펴낸 아버지의 치부책자서전은 1부 묵향 가득한 세상을 꿈꾸다, 2부 큰 것을 선호하는 멋, 솔직한 멋, 하면 된다는 멋, 부록 내가 본 이기현(이상헌 칼럼니스트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문일석 브레이크뉴스 회장의 이기현의 인생은 기적 그 자체’)으로 구성돼 있다. 어린시절 회고를 통해 고단했지만 희망이 있었던 세대를 돌이켜 보고, 인쇄경영인으로서 험난한 여정을 지혜롭게 극복해온 과정, 인쇄 및 출판사 운영 노하우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치부책자서전 출간을 축하합니다. 책 제목이 특이한데요?

1960년대 후반 무렵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강원도 횡성에서 충북 단양의 작은 산골로 이사한 이후 방앗간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의 절반이 외상손님이었습니다. 때문에 아버지의 금전 장부 수첩인 치부책에는 방앗간에서 일을 해주고 못 받은 외상값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때 수업료와 육성회비를 내야 했는데 그러려면 외상값을 받아서 충당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아버지는 그 일로 어머니와 말다툼까지 했습니다. 결국 내가 아버지의 치부책을 들고 외상값을 받으려 마을을 돌아 다녔습니다. 워낙 궁핍하게 사는 집들이라 외상값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아 치부책을 들고 집으로, 논밭으로 찾아가서 외상값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한달쯤 지났을 때는 치부책에 표시된 집들의 3분의 1가량이 돈을 갚았습니다. 그래서 치부책은 나의 유년시절을 상징하는 추억의 노트이기도 합니다.

 

인쇄경영인의 자서전은 흔치 않은데요?

인쇄사 운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주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자서전을 내보라고 권유했지만 한사코 거절해왔습니다. 경험이 일천할 뿐 아니라 나만큼의 고생도 안 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겠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50년 가까이 인쇄 및 출판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소회가 없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자서전이라면 응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후배들에게 시간을 절약하고 성공을 앞당길 수 있는 지혜를 전하는 자기계발서 형태로 책을 출간하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고 용기를 냈습니다. 후배들이 나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시대에 부응하는 방법론을 찾아 마음껏 활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펜을 든 것입니다. 책은 1부에서는 창업을 하는 과정을 그렸고, 2부에선 경영을 하면서 느꼈던 고민을 정리했습니다.

 

인쇄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중학교 2학년 추석 때 도시로 떠났던 마을 젊은이들이 명절을 쇠러 고향에 오더군요. 한껏 멋을 부리고 고향을 찾아온 친구들을 보니 무척 부러웠습니다. 밤마다 초등학교 동창들로부터 도시 생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를 그만두고 사회로 진출하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마침 가뭄의 여파로 방앗간 운영도 예전같지 않아 생활 형편이 빠듯했기 때문입니다. 만류하는 아버지를 설득해 먼 친척이 운영하는 금은방에서 일했는데, 거기서 영문 카탈로그 책을 보게 됐었습니다. 8군에서 흘러나온 책이었는데 반질반질한 종이와 화려한 색감의 컬러 사진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런 책을 인쇄하는 인쇄기술을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국 최고의 인쇄기술자가 되어 갈수록 일감이 떨어져서 힘겨워하시는 부모님께 현금을 듬뿍 드리고, 형과 동생들도 학비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파리가 하루에 천리를 가려면 천리를 갈 수 있는 천리마 이마에 올라타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의 인생에서는 인쇄가 천리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70년대 인쇄사는 어떠했나요?

15살에 서울에 상경, 18살에 인쇄와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먼 친척의 주선으로 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인쇄사의 견습공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는 활판인쇄 전성기였는데, 신문사에 취직해 조판과 인쇄작업을 돕기도 했습니다. 활판인쇄에는 주조, 문선, 식자, 정판, 지형, 연판, 활판, 제책의 과정이 있었는데 그것을 각각 전문가들이 분담해 부서별로 처리했습니다. 당시 인쇄 과정은 전문가가 아니고는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복잡했습니다. 인쇄 기술 전수도 도제식으로 전수되었기 때문에 업무 환경은 엄격했고 규율은 혹독했습니다. 하지만 3년 안에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착실히 실력을 쌓아 20대 초반에는 이미 인쇄업계에서 인정받는 활판 인쇄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주간지 회사에서 신문기술을 배워 신아일보, 충청일보, 조선일보 등 내로라 하는 대형 신문사에 스카우트되어 안정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안정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인쇄사 영업을 시작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몇 개월을 고민한 끝에 안정된 직장인 신문사를 사직하고, 자진해서 적은 봉급에 근무 환경도 열악한 처음 기술을 익혔던 인쇄사로 돌아왔습니다. 게다가 희망 보직도 공장에서 가장 대접받는 인쇄기술자가 아니라 모두가 꺼려하는 영업을 선택했습니다. 인쇄사 경영자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일이 영업이라는 생각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주위사람들의 우려대로 영업 현실은 냉혹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나 잡지사 등 거래처를 방문하면 사장은 물론 직원들까지 마치 잡상인을 대하듯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무너질 뻔 했지만 이 세상에는 영업보다 훨씬 힘든 일이 많다! 여기서 좌절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이 된다. 어떻게든 인쇄매체 사람들과 친해져서 내가 방문하면 그들이 먼저 웃는 얼굴로 반기도록 만들자! 나는 이미 초등학생 시절에 아버지가 포기한 외상값을 받아낼 정도로 강한 끈기와 승부욕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라며 굳은 의지를 다졌습니다. 또한 주먹구구식 영업이 아닌 의미가 담긴 유머 등을 활용하는 등 나만의 관리비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1년이 지났을 때 예닐곱 명의 영업사원 가운데 가장 많은 150여군데의 거래처를 확보했고 회사 매출의 50% 이상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부진한 실적 탓에 어려움을 겪는 부원들에게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해 나눠주고 나만의 영업 노하우도 가르쳐줬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부원들의 영업 실적도 쑥쑥 올랐고,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부원들과 허물없는 친구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베푼 배려는 수년 후 엄청난 힘이 되어 되돌아왔습니다.

 

인쇄사에 대해 소개해주십시오.

형체가 없는 저자의 속내(생각)를 꼴(모양)을 갖춘 문자로 그려내 확실하게 나타내는 것, 즉 이 세상을 묵향 가득한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지닌 현문이라는 회사명을 지었습니다. 함께 운영하는 제책사 상호인 자현도 같은 뜻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오늘(38)이 창립 27주년 기념일입니다. 우리 인쇄사에서는 이름처럼 묵향 가득한 책들을 많이 인쇄하고 있는데, 출판인쇄 거래처만 해도 300여곳에 달합니다. 또한 인쇄시설뿐 아니라 CTP 출력실, 제판실, 무선제책시설 2라인 등 한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한 원스톱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하루 평균 약 10만 권, 3650만 부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인쇄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50년 동안 인쇄업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97IMF 외환위기로 인해 수십억원에 달하는 부도를 맞은 것입니다. 너무나 괴로워하던 그 때, 한밤중에 친구들이 나를 스키장으로 데리고 갔고, 제일 높은 코스에서 나를 떠밀었습니다. 스키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눈밭을 구르고 있었고, 친구들은 스키 폴대로 정신 차리라며 나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대로 죽는 것인가! 이렇게 그만둘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됐습니다. ‘하자! 다시 시작하자라는 마음을 먹었고, 그 친구들이 돈을 빌려주어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1997년 당시 1월에 700원대에 불과하던 엔화가 연말에 1500원까지 뛰어오른 적이 있었는데, 수출은 우리보다 잘 사는 곳으로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본에 출판사를 열었습니다. 출판사 설립을 계기로 인쇄물을 발주받아 우리나라에서 인쇄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요?

인쇄사를 창업한 지 6년째 되던 1995년 가을에 출판업에 진출했습니다. 거래처중의 한 출판사가 도산의 위기에 처하자 밀린 제작비 대신 울며 겨자 먹기로 그 회사를 인수하게 됐습니다. 출판사 운영을 쉽게 생각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25년 동안 인쇄업에 종사하면서 나름대로 출판사 생태를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출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얻는 결론이 심마니형 출판이 아니라 인삼밭형 출판을 지향하자입니다. 산삼이라는 대박만 꿈꾸며 험준한 산속을 헤매는 심마니보다 6년 뒤의 수확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지극정성으로 인삼밭을 돌보는 인삼밭 주인의 심정으로 출판사를 운영하자는 의미입니다. 인삼밭 주인의 마음가짐으로 출판사를 꾸준히 운영한 결과 현재 현문미디어’, ‘생각하는 백성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600여 종이 넘는 책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에 정식 출판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의 동화를 번역·소개하는 등 출판 한류에도 앞장서 오고 있습니다. ‘붕어빵의 꿈’, ‘피아노로 세상을 울려라’, ‘새벽 5’, ‘태왕광개토’, ‘포옹’, ‘달라이 라마식 자녀교육법’, ‘세리의 연장불패 맨발 샷등을 일본에 수출·판매하고 있으며, 한국대표 아동문학 시리즈 전100권 중 아름다운 둥지’, ‘들키고 싶은 비밀’, ‘돌아온 진돗개 백구’, ‘별을 키우는 아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생’, ‘피양랭면집 명옥이’, ‘소원을 들어주는 선물10권이 일본도서관협회의 우수아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일본에 인쇄물을 수출하게 된 것도 우리가 출판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기 때문입니다.

 

인쇄에 대한 철학을 말씀해 주십시오.

인쇄는 무형의 소리를 유형의 문자와 그림으로 바꾸는 숭고한 작업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무형으로 사라질 우리들의 삶, 생각, 사상 등을 종이 위에 유형의 문자와 그림으로 새겨 후세에 널리 전해지도록 만드는 인쇄인들은 역사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인쇄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인쇄는 예술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우리나라의 문화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 외 추가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슬하에 3남을 두고 있는데, 그 중 두 명의 아들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컨테이너 벨트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순리라는 것입니다. 컨테이너 벨트에 인쇄물이 자동으로 실려가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것처럼, 돈이든 사람이든 흘러가도록 두어야지 움켜쥐면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회사의 슬로건이기도 한 아시아를 넘어라, 태평양을 건너라처럼 희망찬 이상을 위해 진력하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월간 프린팅 코리아 2017년 4월호 통권 178호    

 
 

  프린팅코리아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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