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구텐베르크 vs. 맥루한, 끝나지 않은 전쟁(1)
우리는 1445년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음을 기억하고 있다. 바로 구텐베르크(Gutenberg)에 의한 인쇄술의 개발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개발로 인해 인류는 지식의 확산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였다. 김찬원 유플러스연구소 전문위원  
학술 · 연재  |  오피니언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성경 욥기 87

 

구텐베르크를 기억하라

우리는 1445년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음을 기억하고 있다. 바로 구텐베르크(Gutenberg)에 의한 인쇄술의 개발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개발로 인해 인류는 지식의 확산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였다. 인쇄술이 개발되기 전 책이나 서적은 당시의 왕이나 귀족, 성직자와 같은 소수계층만이 이용할 수 있는 전유물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아예 없거나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설사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소수의 지배계층이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이 책을 구입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다. 당시 책이나 서적의 생산은 필사로만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 권의 책, 예를 들면 성경책 하나를 필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책이나 서적은 당시 소수의 지배계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자 그들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 유지해나갈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개발은 당시 지배계급의 우월적 지위를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소수계층의 주요한 통치수단이자 그들만의 전유물이어야 할 지식이 책이나 서적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된다는 사실은 그들의 지배적 수단인 지식이 다양한 계층으로 분산되어감에 따라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누려왔던 우월적 지위가 약화, 상실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쇄술 개발 이후에 당시 소수 지배계층은 인쇄업을 초기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책이나 서적의 출판을 엄격하게 제한하거나 스스로 독점하는 방식을 통해 책이나 서적, 엄밀히 말해서 지식의 확산을 철저하게 억제하려고 하였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책이나 서적은 인쇄술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일반 계층에게로 확산되면서 읽고 쓰고자 하는 능력에 대한 욕구 역시 일반 계층에게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결국 종교적이면서도 세속적인 권위는 서서히 해체되어 갔고, 소수계층에 의한 지식의 독점은 일반 계층에게도 확산, 학문적 진보가 촉진되면서 계몽주의 시대의 도래와 근대로의 발전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성경의 욥기 87절에 나와 있는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구절처럼, 그 소소한 시작의 끝은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긋는 파장을 유발하였고, 결국에 지식의 확산을 통한 근대로 발전할 수 있는 직접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구텐베르크와 맥루한, 전쟁의 서막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개발과 항상 대치되는 접점은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맥루한(McLuhan)이다. 맥루한은 지식의 확산과 근대로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인쇄술 개발을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라고 비판하고, ‘바보상자라고 일컬어지는 TV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칭송하였다.

맥루한은 왜 TV를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하였을까? 맥루한은 인류의 역사를 당시 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종류에 따라 총 4가지 단계로 분류한다.

첫 단계는 구두 커뮤니케이션에만 의존해야 했던 원시부족사회이다. 원시부족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면서 의사소통은 구전에 의존해야만 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오감, 즉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모두를 동시에 활용해야만 했다. 물론 오감 중 시각과 청각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된 감각이었으나, 시각과 청각 이외에 또 다른 감각이 추가될 때마다 정보의 명확성과 정확성은 더욱 더 향상되었음은 자명하다. 예를 들면, 인간의 시각이나 청각으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거리에서 불이 났을 경우에 타는 냄새까지 동반한다면 그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알파벳이나 한자의 등장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문자시대나 필사시대로, 이 시대부터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시각에 의존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문자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극히 적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시각과 청각, 후각 등을 동시에 사용하는 복수감각형 인간이 지배적이었다.

세 번째 단계는 바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개발 이후로, 네 번째 단계인 전자미디어가 나오기 전까지이다. 맥루한이 비판하는 지점이 바로 세 번째 단계이다. , 인쇄술 개발 이후 책이나 서적이 대량 생산,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복수감각에서 탈피, 시각에 의존하는 단일감각형 인간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 책이나 서적은 오감 중 시각이라는 눈의 우위를 가져와 나머지 감각기관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모든 인식의 질서를 시각적 양태로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식의 질서를 시각적 양태로 바꿔놓았다는 것은 맥루한이 인쇄술의 개발을 최악의 발명품이라고 비판하는 주요 지점이기도 하다.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가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시각에만 의존하는 건 자칫 오해와 편견을 유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부하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어느 한 것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면 결국 과부하라는 것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과부하는 정보의 수용과 올바른 해석을 방해, 결국 잘못되거나 그릇된 평가를 내리게 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활용하여 정보를 수용한다면, 막대한 정보가 시각과 청각을 통해 분산 수용되기 때문에 과부하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각과 청각에 후각이나 촉각 등과 같은 감각이 계속해서 추가될 경우에는 과부하 없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해석에 있어서도 그 정확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맥루한의 입장에서 오감을 활용한 복수감각형에서 시각에 의존하게 되는 단일감각형은 오히려 인간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구두커뮤니케이션이 지배한 원시공동사회에서는 개인주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었다. 구두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한 공간에서 화자와 청자가 동시에 존재해야만 하고, 면대면(face to face)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두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 결속을 강화하고 공동체를 공고히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비슷한 지식을 소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 즉 독서나 쓰기는 지극히 개인적 활동이기 때문에 개인적 능력이 중요해지고, 이는 개인주의의 태동과 더불어 공동체의 해체를 가져왔으며, 심지어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와 같이 사람들에 대한 분류와 범주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라디오나 TV와 같은 전자미디어 시대로서, 맥루한은 시각과 청각 중심의 TV가 등장하면서 원시공동사회에서처럼 인간이 오감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시대로 회귀할 수 있는 단초가 제공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맥루한이 ‘TV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하는 지점이다. TV는 인간이 책이나 서적에 의존함으로써 그 동안 불균형을 이루었던 커뮤니케이션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금 마련해주었고,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세계를 하나로 연결함으로써 그 동안 조각난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지구촌화를 가속화시켜 과거의 공동체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맥루한에게 인쇄술은 인류 최악의 발명품인 반면에 TV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일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반격

미디어생태학자들은 맥루한의 주장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하였다. 미디어생태학자들은 맥루한의 비판 지점을 기술결정론에서 찾는다. 기술결정론은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서 기술이 사회변화를 결정하고, 사회변화의 원동력은 바로 기술이라는 시각이다. 맥루한은 TV라는 기술이 곧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핵심 요인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생태학자들에게 맥루한의 주장은 다분히 기술결정론에 기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술결정론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인간의 문제이다. 즉 기술이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가정한다면,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기술에 의해 변화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면, 인간은 더 이상 주체가 아닌 객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맥루한의 기술결정론적 시각은 미디어생태학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미디어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1990년대 기술사학계 내에서도 기술이 역사를 추동하는가?(Does Technology Drive History?)’라는 저서의 출간을 통해 이제 기술결정론은 죽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동안 수많은 기술이 등장하고 사라진 예에서 보듯이,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사용하거나 수용하지 않으면, 그 기술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국 기술의 수용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술이 갖고 있는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은 기술과 사회는 따로 분리되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한다는 공진화(Co-Evaluation) 관점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맥루한이 일련의 저서(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1964, 미디어는 마사지다, 1967)를 통해 인쇄술은 인류 최악의 발명품, TV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주장은 미디어생태학자들이 기술결정론적 시각이라고 주장하는 중요한 비판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비판적 관점은 TV의 메시지 전달방식에 근거한다.

첫째, TV의 주요 메시지 전달방식은 바로 이미지(image)이다. 서로 분리된 수많은 이미지들이 인간의 눈으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서로 분리된 이미지라는 말은 의미하는 바가 전혀 가볍지 않다. , 서로 분리된 이미지라는 것은 임의적으로 분리된 이미지를 배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쉽게 얘기해서 분리된 이미지의 임의적 배열을 통해 전혀 다른 의미를 생성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해서 조작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TV선전(propaganda)’ 매체가 된다.

둘째, 미디어생태학자들에 의하면, 이미지는 인간의 우측 뇌를 발달시킨다. 인간의 좌측 뇌가 이성이나 합리성, 논리 등을 담당한다면, 우측 뇌는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그러므로 TV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우측 뇌가 발달함으로써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 혹은 감정적 판단이 앞서게 됨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TV에 많이 노출될수록 사람들은 TV가 주장하거나 제공하는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되며, 이미지 중심의 TV를 통해 쉽게 조작됨은 물론 특정 사안이나 대상 등에 대해 왜곡된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독서나 글쓰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좌측 뇌가 발달한다. 그러므로 좌측 뇌가 발달한 사람은 어떤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 등을 통해 해당 메시지를 재해석하고 평가하며, 그 과정 속에서 메시지의 진위 여부를 파악해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좌측 뇌가 발달한 사람은 TV 메시지에 의해 쉽게 조작되거나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서나 글쓰기는 TV가 갖고 있는 선전매체로서의 메시지 조작이나 왜곡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가 된다.

 

구텐베르크와 맥루한의 해묵은 논쟁, 다시 부활하나

우리는 분명 기술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작금이 첨단기술사회라고 지칭해도 무방할 만큼 기술의 고도화와 그 진화적 속성에 의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TV는 더욱 지배적 매체로 부상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TV라는 지배적 매체가 아니라 TV의 주요한 메시지 전달 수단인 이미지TV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모바일 중심의 스마트미디어 영역으로 확대, 발전하고 있으며, 이미지 중심의 기술은 이제 실재(reality)보다 더 실재(hyper reality)와 같은 수준으로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구텐베르크(엄밀히 말해서 미디어생태학자들)와 맥루한의 해묵은 논쟁은 다시금 새로운 불씨로 재조명되고 있다.

TV는 실재보다 더 실재와 같은 이미지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의 몰입감과 현장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미디어 역시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통해 VR(virtual reality)과의 결합을 추구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화는 곧 이미지의 진화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여기에 오감을 적용한 기술들이 결합되어 가고 있다. 이미 이미지와 후각(향기), 이미지와 촉각(터치감)은 기술적으로 구현되었고, 향후 오감이 적용된 기술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미지와 오감의 결합은 결국 실재감과 현장감, 몰입감을 더욱 높이기 위한 과정이다. 결국, 이미지는 과거보다 훨씬 더 지배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미디어생태학자들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보는 텍스트 역시 결국에는 이미지라고 강조한다. , 우리는 텍스트를 읽고 있다고 인식할지 몰라도 우리의 뇌는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e북이나 탭을 통해 책이나 서적을 보는 행위는 텍스트를 읽는 행위가 아닌 이미지에 노출되는 행위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미디어생태학자들의 관점에서 작금의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의 기술적 진화는 맥루한이 언급한 바와 같이 오감이 결합되어 가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으나, 그 과정이 현실화되어 갈수록 미디어생태학자들의 우려 역시 커질 것이다. 작금에 이르러 구텐베르크와 맥루한의 해묵은 논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종교재판을 받고 재판정을 나오면서 혼자 중얼거렸던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이 묘하게 지금의 상황과 유사한 맥락을 형성한다. “그래도 책이다

 

 

월간 프린팅 코리아 2017년 8월호 통권 182호    

 
 

  프린팅코리아 201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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