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구텐베르크 vs. 맥루한, 끝나지 않은 전쟁(2)
우리는 간혹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슬픈 장면이 나올 경우에 거기에 동화되어 같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종종 목격한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필자는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학술 · 연재  |  오피니언



 

책 속에 꿈과 상상이 있음을 기억하자

필자

  

본질을 왜곡시키는 이미지

우리는 간혹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슬픈 장면이 나올 경우에 거기에 동화되어 같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종종 목격한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필자는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좋게 얘기하면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반면에 나쁘게 얘기하자면, 미디어에 의해 쉽게 조작되거나 조종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미디어가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이기 때문에 어떤 때에는 권력의 파수꾼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권력은 언제나 미디어를 먼저 장악하며, 미디어를 통해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강력한 선전매체인 TV, 특히 이미지의 힘은 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그 옛날 바벨탑을 세우려고 했던 인간의 오만함에 비견될 만큼의 강력함을 지닌다. 분명히 이미지는 책이나 서적보다 훨씬 강력한 정보전달력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프레임의 배열을 통해 본래의 의미를 조작하거나 왜곡하여 전달하는 데 있어 훨씬 용이하다. 더구나 책이나 서적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활동이지만, 이미지를 메시지 전달수단으로 하는 TV는 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대에 동일한 장면(의미 포함)을 보는 대중적 활동이면서도 현실에 있을 법한 내용을 이미지화하여 전달하기 때문에 추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인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나 서적보다 의미전달의 강력함을 지닌다. 다시 말해서, 어떤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임의적이고 고의적인 프레임이나 그 배치를 통해 본질의 의미를 훼손하고 왜곡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한 장의 사진(이미지)이 있다고 치자. 그 사진 속에는 시위대가 포위된 소수의 진압경찰을 일방적으로 폭행하는 모습과 그로 인해 피를 흘리고 있는 경찰, 그리고 어느 한 경찰이 피를 흘리고 있는 동료를 자신의 몸으로 감싸 안아 보호하는 와중에 대신 폭행을 당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사진(이미지)은 그것을 보는 어느 누구라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시위진압 경찰이 소수의 시위대를 포위하여 일방적으로 구타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본다면, 그 사진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커다란 분노에 휩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성을 지배하는 것보다 감성을 지배하는 것이 더욱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처럼 어떤 장면이 담겨져 있느냐에 따라 시위의 성격은 명백하게 달라진다. , 폭력시위가 될 수도 있고, 폭력진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것인가는 그 사진을 찍은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폭력시위라는 부분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시위진압 경찰을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있는 시위장면을 담아야 할 것이고, 폭력진압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시위진압 경찰에 의해 폭행을 당하고 있는 시위대를 강조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자 개인의 신념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신문사나 방송사의 전반적인 정치적 성향이나 의도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장면, 정확히 말해서 이미지는 책이나 서적의 글자보다 우리의 뇌 속에 순식간에 흡수되고, 오랫동안 기억된다. 영화장면을 생각해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언제나 잔상이 남는다. , 감동스러운 장면, 혹은 자신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장면 등 영화제목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 영화와 관련된 특정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책이나 서적은 어떤 모습을 글로써 추상적으로 그려내고 묘사하기 때문에 영화처럼 잔상으로 남지 않으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겨지지도 않는다. 이처럼 이미지는 프레임의 배치나 배열을 통해 조작할 수 있으면서도 우리의 뇌 속에 빨리 흡수되어 오랫동안 기억되기 때문에 책이나 서적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미지를 보고 해석할 때 신중해야 한다. 반면에 책이나 서적은 추상적이라는 특성상 책이나 서적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상상을 하게 한다. 하지만 이미지는 굳이 생각이나 상상할 필요가 없다. 이미지 안에 모든 것이 형상화되어 구체성을 띠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미지는 책이나 서적보다 훨씬 더 잘 기억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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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은 이미지를 극대화시킨다: 살아 있는 콘텐츠?

현재 인간의 감각 중 우위에 있는 것은 분명코 시각이다. 사람들은 특정 현상에 대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각에 의존하는 이미지라는 정보적 힘은 인간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보적 요소이기도 하다. 이미지를 통해 정보를 해독하는 과정은 매우 단순하다. 책이나 서적은 반드시 글을 알아야 정보를 해독할 수 있으나, 이미지는 굳이 글을 알지 못해도 정보를 해독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책이나 서적은 정보를 해독하는 데 있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지만, 이미지는 그저 이미지를 재생해내는 기계만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단순히 이미지만으로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어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미지에 소리(sound)라는 요소가 결합되면, 정보적 요소는 더욱 더 배가된다. 공포영화를 생각해보자. 공포영화를 말 그대로 공포스럽게 만드는 한 축은 소리(sound)이다. 소리를 뺀 공포영화는 사실 공포영화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또한 무서운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나온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이미지나 소리가 각기 개별적으로만 작용한다면, 시각 또는 청각이라는 단일 감각만을 자극하게 되고, 수용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별 다른 감흥 역시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이미지와 소리가 결합되어 전달되면, 수용자 역시 시각과 청각이라는 복수감각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단일감각에 의해 제공된 정보에 비해 그 해석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정보해석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그 만큼 실재감 역시 높아짐을 의미하기 때문에 수용자들의 몰입감 역시 향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용자들이 실재감을 높게 지각할수록 몰입도 높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이미지와 소리, 터치감(만지는 느낌), 냄새 등이 결합되었을 경우에 실재감을 지각하는 수준은 더욱 높아질 것임은 당연하고, 실재감을 느낄수록 몰입감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마치 내가 현장에 있으면서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동일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굳이 현장에 갈 필요도 없이 거실이나 소파에 편안히 앉아서 그 느낌을 만끽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오감이 결합되어 나타날 경우에 그 오감 중에서도 분명히 우위에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과연 오감 중 어느 것이 우위에 있을까? 지극히 필자의 개인적 사견일수도 있으나, 그것은 분명 이미지일 것이다. , 청각과 촉각, 후각, 미각은 시각 위주인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며, 그러한 이미지는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강력한 실재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사이버섹스가 그 예이다. 사이버섹스의 주요 정보전달 수단은 결국 이미지이다. 이미지에 청각과 촉각, 후각, 미각이 결합되면서 시각 위주의 강력한 이미지는 마치 살아 있는 어떤 것,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 있는 콘텐츠(living contents)’로 부상한다. 살아 있는 콘텐츠는 단순히 생동감이 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인간은 상상의 동물이다. 이른바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가 언급했던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이다. 호모 루덴스는 유희적인 인간을 뜻하는데, 단순히 유희, 즉 놀이하는 인간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정신적인 창조활동을 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실재(實在)로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무언가를 실재처럼 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법적으로도 혹은 도덕적으로도 아무런 처벌이나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처럼 즐거운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인간은 수많은 상상을 하면서 살아간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을 상상으로나마 대체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을 비록 가상이기는 하지만 현실 속에서 하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감이 결합되면 상상은 더 이상 상상으로 끝나지 않으며,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실재가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많은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오감을 결합시킬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게 되면 성장 잠재력이 가장 큰 시장으로 전술한 사이버섹스(cyber sex) 시장을 꼽는다.

사이버섹스는 가상현실 속에서 육체적 접촉 없이 가상현실 섹스를 구현하는 기술로 센서를 통해 두뇌의 감각신경을 자극하여 실제 성행위와 유사하게 느끼는 감각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육체적 접촉 없이도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전달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성인물(포르노그라피) 시장규모가 약 1000억 달러라고 가정한다면, 가상현실 시장의 잠재력은 엄청날 것임은 자명하다. 사이버섹스는 임신이나 성병에 걸릴 위험도 없을 뿐 아니라 원하는 상대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등 성적 불만족을 해소할 수 있다. 다만 지나치게 탐닉할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다양한 문제점(원조교제나 변태 성행위, 신종 사이버매춘 등)에 노출될 수 있다. 어쨌든 오감을 이용한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경우에 상상이 곧 현실이 될 수 있다. 가히 파격적인 기술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이미지는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오감이 결합되어 갈수록 이미지는 더욱 더 강력한 왜곡의 수단이 될 것이다. 그것이 비록 가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상은 중요하지 않다. 실재로 느껴지기에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실재화된 이미지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할 가능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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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현실로 된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이유

이미지에 실재감이 높아질수록 몰입감은 더욱 커질 것임은 자명하다. 특히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을 현실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 즐거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하지만 한번쯤 고민해보자. 다소 철학적인 고민일 것이다. 상상(想像)은 상상할 때 더욱 즐겁다. 상상이 현실로 될 때는 기쁘고 즐거울 것이나, 그것이 마냥 지속되지는 않는다. 사람은 언제나 시감각의 항상성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다. 그 어떠한 자극이라도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그것은 더 이상 자극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전보다 강력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극은 계속해서 더 강력한 자극을 필요로 하고, 일정한 임계점에 도달하면 그 보다 더 강력한 자극을 원하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된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영화를 보면 간혹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 잔인한 장면은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거의 영화와 현재의 영화를 비교해보면, 잔인한 장면의 묘사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과거보다 현재가 훨씬 더 잔인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사실 그 수위도 매우 높다. 왜 그러한 차이를 보일까? 그것은 시감각의 항상성 때문이다. 과거 영화에서 보이던 장면이 더 이상 자극으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점차적으로 그 강도를 더해가는 것이다. 이는 TV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TV에서 보이는 모습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극적이다. 하지만 TV의 대중성 때문에 영화처럼 강력한 자극적 요소(이미지)를 자유롭게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스토리가 자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상상이 현실로 된다는 것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상상은 상상할 수 있을 때 더욱 더 즐거운 것이 된다. 인간이 호모루덴스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이다.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은 상상이 가능할 때 나온다. 필자 역시 기술적 고도화를 통해 오감의 결합되어 가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감이 결합되어 가도 결국 그 중심에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기에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추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책이나 서적은 우리의 무한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영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이나 해리포터(Harry Potter)’는 그 시작이 책(서적)이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경고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기술이 언제나 만능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은 인류에게 언제나 희망찬 미래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때로는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기술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부정적 결과를 야기하기도 하며, 그에 의한 부정적 결과는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의 파국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현재 오감을 결합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밝은 미래를 약속한 듯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러한 기술은 다분히 경제적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으로 얼마나 커다란 효과를 이끌어낼 것인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경제적 효과는 기술개발의 당위성에서 최우선시 되며, 모든 부정적 결과는 배제된 채 긍정적 결과만이 설득 논리로 부상한다. 설사 부정적 결과의 가능성에 대한 주장이 펼쳐진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또 다른 진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부정적 결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면 된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기술의 부정적 결과를 막기 위해 또 다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결국 고도의 기술사회에서 기술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으로 인식된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것이다. 기술이 만능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모든 것을 기술로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감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역시 그렇다. 오감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원시공동사회의 그것처럼 고도화할 수 있는 근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의 여지가 없으나,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도 생각해야 할 때이다.

 

 

월간 프린팅 코리아 2017년 9월호 통권 183호    

 
 

  프린팅코리아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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