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과학기술에 대한 인쇄출판계의 대처와 자세 (1)
과학기술의 본질 파헤치기
첨단 과학기술 사회에서 그에 기반한 ‘변화’는 당연시되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과학기술의 본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춘다 하더라도 처마 밑의 그림자는 드리워지기 마련이다. 과학기술도 마찬가지이다. 김찬원 유플러스연구소 전문위원  
학술 · 연재  |  오피니언


 

그 본질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과학기술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와 대처를 이해하게 된다. 본고는 첨단 과학기술 사회에서 인쇄출판계와 인쇄출판인들이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련의 시리즈 중 첫 번째 글이다.

 

과학기술, 그 위험의 경계

아주 오래 전에 사람들의 삶에 불안과 위험을 주었던 것은 자연환경이었다. 태풍이나 지진, 해일, 가뭄, 화재, 폭우, 대설 등이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유발하는 요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와서는 기술 환경이 그 위험을 대신해나가고 있다. 물론 지금도 자연재해는 인간에게 커다란 피해를 유발하는 원인이지만,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자연재해 발생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또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선제적 대응체계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애초부터 자연재해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아직까지 인간에게는 불가능의 영역이지만, 자연재해 발생 시점을 정확하게 예측, 그에 대해 사전에 대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춤으로써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확실한 것은 과거에 비해 자연재해에 의한 재난으로부터 훨씬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사회에 와서 왜 과학기술이 위험을 대체해나갈까? 한번쯤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인간은 현대 과학기술의 눈부신 진보에 힘 입어 물질적 풍요를 이룩하였고, 생활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전반적인 삶이 윤택해졌다. 또한 과학기술이 의학기술에 접목되면서 몇몇 난치병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질병을 정복할 수 있었다. 이제는 체세포복제기술을 통해 동물로부터 장기를 공급받아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체세포복제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세포대체요법(Cell Replacement Therapy)(세포대체요법은 질병에 걸린 세포를 새로운 건강한 세포로 바꿔주는 요법이다)을 통해 난치병으로 알려진 파킨슨씨병,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 척추손상에 의한 사지마비, 중풍, 소아당뇨병, 심근경색, 간경화 등의 질화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분명코 과학기술은 인류의 발전에 커다란 획을 그은 셈이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과학기술의 혜택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모든 과학기술이 항상 긍정적인 방식으로만 나타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과학기술은 전에도 유례가 없을 정도의 규모로 사람을 살상하였고, 화학무기가 발명되면서 살상의 규모는 수십 배 증가하였으며, 고도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첨단무기(핵무기)는 지구를 일순간에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지로 만들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다양한 환경오염(각종 산업폐기물, 공해, 미세먼지, 기후변화 등)을 유발함으로써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는 대형기술사고를 심심치 않게 목도한다. 20113월에 발생한 일본의 후쿠시마(Fukushima)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비교적 근래에서 가장 컸던 기술사고일 것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도쿄전력의 늑장대처와 무사안일이 합쳐진 재해이다. 20127월 일본의 국회사고조사위원회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재해라고 결론 내렸다. 원자력발전소는 우리에게 무한에 가까운 청정에너지를 제공한다. 석탄이나 석유와 같이 화학연료를 파내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염려도 없고, 석탄이나 석유를 땔 때, 유발되는 공해의 걱정도 없다. 가히 원자력발전소는 지금까지의 기준으로 봤을 때, 현존하는 최고의 청정 에너지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인간에게 재앙에 가까운 위험원(risk source)으로 변모하였다. 사람이 유출된 방사능에 의해 피폭되면, 다양한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많고, 방사능이 사람이나 동물, 식물의 DNA를 파괴시켜 돌연변이를 유발하기도 한다. 또한 한번 유출된 방사능은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죽음의 땅으로 변한다. 19864월에 발생한 구소련(현 러시아)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1986426일 체르노빌 원전에서 20세기 최대이자 최악의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원인은 터빈발전기 관성력을 시험하기 위해 낮췄던 출력을 무리하게 높이다가 원자로가 폭주해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이어 핵연료가 순간적으로 파열, 원자로가 폭발했다. 31명이 죽고 피폭(被曝) 영향으로 19914월까지 5년 동안에 7000여 명이 사망하고 70여만 명이 치료를 받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방사성 물질이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에 낙하해 수십 년간 피해를 주었다)로 인해 지금까지도 그 지역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금지의 구역으로 되어 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과학기술은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사람들에게 한없는 혜택과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미래 어느 한 순간에 심각한 위험으로 변모하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닌 야누스인 셈이다.

 

과학기술과 불확실성

첨단 과학기술은 이상주의자에겐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이상적인 결과물이다. 아마도 일반 사람들 중에서도 첨단 과학기술이 가져다 줄 이상적인 미래에 대해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히 현대의 의학기술로 고칠 수 없는 질병에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첨단 과학기술은 자신의 질병을 완치시켜 줄 유일한 방법이라고 인식될 수도 있다. 척추신경 손상으로 휠체어에 의존하는 사람들, 시신경 손상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 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 첨단 과학기술이 수많은 질병을 극복하고, 그 수혜자가 자신이 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치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도, 속단할 수도 없다. 언젠가는 첨단 과학기술에 기반한 의학기술의 고도화로 그 동안 정복되지 않은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열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when)’이다. “언제 치료의 길이 열릴 것인가?”가 발목을 붙잡는다. “과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완쾌되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당장 질병에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겐 중요한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과학자나 의사들도 된다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확고함보다는 가능성을 얘기한다. 현실과 희망의 경계 속에서 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나는 확고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과학자나 의사들을 비난할 마음은 전혀 없다. 내가 과학자나 의사라도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모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이것도 한 이유일 수 있으나, 가장 커다란 이유는 의학기술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불확실성(uncertainty)이란 과학기술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미래의 결과가 얼마나 커다란 위험을 초래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첨단 과학기술은 그 개발의 당위성이 대부분 필요에 의한 것이며, 그 기술이 개발되면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유발할 것이라는 당위성을 주창한다. 왜냐하면 그 과학기술 개발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혜택이 있어야 당연히 그 기술개발에 유무형의 투자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개발은 항상 사람들에게 이익과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제 하에 개발된다. 하지만 과연 과학기술의 개발이 무조건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과학자나 전문가를 포함한 그 어느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 이는 과학기술에 의한 결과나 영향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된 과학기술로 인해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부정적 결과가 나타날 수 있고, 그 결과는 인류의 생존에 치명적 결과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첨단 과학기술이 갖는 불확실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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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온 세상을 비춘다고 하더라도 처마 밑에 그림자는 드리워지기 마련

지금 한참 뜨고 있는 인공지능 (AI: Artificial Intelligence)을 예로 들 수 있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스스로 학습을 통해 인간과 같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됨을 의미한다. 기계가 인간과 똑같이 사고하고, 판단하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독립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은 필히 로봇에 탑재된다. 이른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해보자.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상당하다. 우선은 일상생활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여 온갖 잡스러운 일을 다 맡아 하게 될 것이다. 가사에서부터 육아, 청소, 심부름, 빨래, 음식장만, 설거지 등 온갖 귀찮고 굳은 일을 인공지능 로봇이 하게 된다. 주부는 가사와 육아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다. 휴식을 취하거나 자기계발을 위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이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한가? 이 뿐만 아니다. 인공지능 로봇은 훌륭한 농사꾼이 된다. 농부를 대신해서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며, 식물을 심는 등 모든 일을 도맡아 한다. 눈비가 내리고 강추위가 와도 일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보자.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일만 생길까? 단정하건데, 절대 그렇지 않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태양이 세상 모든 곳을 비춘다고 하더라도 처마 밑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법이다. 인공지능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우려 섞인 말들을 내뱉은 적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는 인공지능에 대해 초기에는 기계들이 인간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줄 것이나, 미래에 인공지능이 강력해지면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 역시 인공지능 로봇이 인류보다 빠르게 진화할 잠재력을 갖췄으며, 인공지능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단계가 왔을 경우에 인간의 미래가 반드시 우호적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것은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가?”라는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시점에서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확실치도 않은 미래의 경고에 겁을 집어먹어 인공지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긍정적 가능성을 포기하기도 힘들다. 이것이 바로 불확실성이 가지는 힘이다. 그리고 현대 과학기술의 대부분이 불확실성이라는 이름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수많은 과학자들(기업 포함)에 의해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고, 그들은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기술이 사회와 시대를 변화시키고, 인류 문명의 한 차원 높은 진보에 기여할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불확실성을 생각하면, 미래 어느 순간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과학기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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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자체가 딜레마를 초래하는 상황

과학기술이 가지는 야누스적 성격과 불확실성은 변화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이나 이익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변화를 위해서는 그 동안 누려왔던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도록 할지도 모른다. 또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자본을 요구한다. 작금의 상황이 고도의 첨단 과학기술에 의한 변화이기에 그 첨단 과학기술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투입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가 곧 성공이라는 단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투자에 따른 실패와 그에 따른 여파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열악하고 자본에 취약한 인쇄출판환경을 고려하면, 고도 첨단 과학기술의 무조건적인 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쉽게 말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기에 작금의 환경은 인쇄출판계로 하여끔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인쇄출판계는 그 변화를 무조건 수용할 수도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상황은 인쇄출판계에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한다. 변화 자체가 인쇄출판계에게는 딜레마를 초래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에서 한번쯤 인쇄출판인으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인쇄출판계는 변화를 원하는가? 아니면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가? 변화를 원하는 것요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변화를 원한다는 것은 그 간절함이 묻어나지만 수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원하는 것이지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이나 노력이 없는 것이다. 나는 변화를 원하는데 주변 환경이나 조건들이 따라가질 못하다는 식의 의미가 포함된다. 하지만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은 주체적이면서도 능동적인 것을 포함한다. 예컨대,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과 노력이 내포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쇄출판인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변화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변화를 요구하는 것인지를 냉정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변화를 원하는 것이라면 정부나 기업의 투자만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투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에 따른 인쇄출판계 스스로의 분명하고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작금의 현실에서 인쇄출판계 혹은 인쇄출판인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한번쯤 냉정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촛불은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것인가 아니면 촛불이 바람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것인가?”

 

위의 구절을 한번쯤 생각해보길 바란다

월간 프린팅 코리아 2017년 10월호 통권 183호    

 
 

  프린팅코리아 201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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