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과학기술에 대한 인쇄출판계의 대처와 자세 (2)
인쇄출판계, 권위를 세우자
첨단 과학기술 사회에서 그에 기반한 ‘변화’는 당연시되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과학기술의 본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춘다 하더라도 처마 밑의 그림자는 드리워지기 마련이다. 김찬원 유플러스연구소 전문위원  
학술 · 연재  |  오피니언


 

과학기술도 마찬가지이다. 그 본질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과학기술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와 대처를 이해하게 된다. 본고는 첨단 과학기술 사회에서 인쇄출판계와 인쇄출판인들이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련의 시리즈 중 두 번째 글이다.

 

 

과학기술에서 첨단이 갖는 상징성

오늘날 과학기술은 첨단이라는 용어를 통해 그 의미에 있어서 이전 기술과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첨단이라는 용어는 국어사전을 보면, “시대사조나 학문, 유행 따위의 맨 앞장으로 정의되지만, 과학기술 영역에서 첨단은 새로운 것’,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앞서 가는 것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용어이며, 이를 통해 기술개발의 정당성과 사회적 수용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첨단 과학기술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첨단 과학기술이 현대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도, 반박의 여지도 없다. 첨단 과학기술의 다양한 사회적 제 분야에 대한 적용은 의학기술의 고도화를 통해 수많은 질병을 정복하고, 인간 수명의 연장과 더불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첨단 과학기술의 개발 목적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human)이 놓여 있으며, 거창하게는 인류(mankind) 발전이라는 명목 속에서 가치 규정된다. 이에 따라 첨단 과학기술은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위한 것이고, 나아가 인류 전체의 보편적 가치라는 당위성을 가진다. 하지만 첨단 과학기술의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가 숨어 있다. 자본의 논리는 기술개발에 들어간 투자금의 회수이며, 투자금에는 단순히 물질적 측면의 돈뿐만 아니라 시간과 노력 등 기타 비물질적 요소도 포함된다. 투자금과 같은 물질적 요소는 쉽게 산정되지만, 비물질적 요소는 쉽게 계산되지 않으며, 흔히 말하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상당히 자의적이고 전략적으로 산정된다.

그래서 첨단 과학기술의 개발에 자본의 논리가 들어갈 경우에 인간의(of the people), 인간에 의한(by the people), 인간을 위한(for the people)’ 기술에서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기술로 변질되고, 공공의 이익과는 전혀 무관해지는, 오로지 자본의 논리만이 남게 된다. 과거 과학은 진리에 대한 탐구와 이해를 통해 자연의 법칙을 밝히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의 탐구를 통해 밝혀진 자연의 법칙은 어느 한 개인이 아닌 인류 모두의 소유였던 것이다. 반면에 기술은 자연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개발된, 혹은 발명된 그 무엇이었기에 그것을 개발한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과학과 기술이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로 통합되면서 과학기술은 더 이상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것이 아닌 자연 지배의 수단이 되었으며, 그에 따라 개인 혹은 조직의 소유물이 되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은 자본의 논리가 적용되는 영역으로 새롭게 구축되었다.

이에 따라 오늘날은 자본이 철저하게 뒷받침되어야 첨단 과학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기반한 사회구조 속에서 자본은 과학기술의 첨단화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 불가결의 요소이며, 이를 통해 구현된 많은 기술들은 비록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만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개선하는 데 기여하였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의 논리인 것이다. 과학기술에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기 때문에 과학기술은 보편적 가치나 공익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익(private interest)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따라서 과학기술 그 자체는 근본적으로 공익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익적 가치를 위한 것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자본의 논리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핵심 이슈로 등장했던 4차 산업혁명 역시 자본의 논리가 투영된다. 이에 대해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혁명(revolution)과 혁신(innovation)의 차이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혁명은 간단하게 말해서 어느 한 사회를 지탱하는 동력원이나 지향점이 바뀌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사회구조 패러다임 자체가 전환(paradigm shift)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혁신은 이전의 것과는 다른 어떤 것, 혹은 명확히 구분되거나 차별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보편적 이동수단이었던 시절에 오토바이의 등장은 그 자체적으로 혁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혁신이 모이고 모여서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추동하게 된다면, 그때는 혁명이 되는 것이다.

다보스 포럼에서 언급된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비판지점은 그 실체가 없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추상적이면서도 예측에 가깝고, 이론적으로 정립된 개념이 아니기에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자본의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본의 논리가 숨어있다. 야누스적인 특성을 가진 과학기술의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을 봐야 하듯이, 4차 산업혁명 이면에 존재하는 자본의 논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필자가 이곳 칼럼을 통해 일부 언급하였지만, 그것을 상기시키는 차원에서 간단하게 언급해보자. 현재의 분위기만 놓고 본다면, 4차 산업혁명은 반드시 도래할 것이다. 필자 역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4차 산업혁명은 도래할 수밖에 없다.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 한다. 패션에 있어서 유행은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패션전문가가 유행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전문가의 주장이 유행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끊임없이 생산-소비가 작동되어야만 시장은 성장한다. 그런데 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거나 1~2% 내에서 경제성장률이 정체되어 있다. 흔히 말해서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전에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주요 동인들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아주 오랫동안 경제성장률이 정체되어 왔다. 그 동안 승승장구했던 일본의 경우에는 그 충격이 더욱 컸을 것이다. 흔히 잃어버린 10이라는 용어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자민당이 집권여당으로서의 위치를 한 동안 빼앗겼던 것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정치적 용어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예전 한나라당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집권에 실패했던 기간을 잃어버린 10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제는 힘이 다한 이전의 동력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동력원(drive power or drive source)을 찾을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고도의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기술과 관련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나 IoT(internet of thing) 등과 같은 신개념의 최첨단 기술들이다. 그 동안 주요 선진국이든 기업이든 상관없이 최첨단 과학기술에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어 왔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동력에 투자하고 해당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면 수많은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뒤쳐질 것이라는 분위기 역시 성공적으로 안착되어 왔다. 정체된 경제성장률은 생산-소비를 둔화시키기 때문에 자본의 논리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새로운 성장 동력과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분위기 조성은 자본의 논리가 다시금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그 당위성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탈을 쓰고 등장한 셈이다.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이용하는 것이 필요

현재 첨단 과학기술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인쇄출판계 내에서도 지금의 흐름에 동참하여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 나오고 있다. 아마도 인쇄출판인이라면 누구나 변화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쇄출판인 대부분은 고질적인 영세성을 토로하면서 실질적인 변화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지원을 요구한다. 자본의 논리가 적용된 과학기술은 많은 전환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에 당연히 영세성은 변화를 가로막는 전환 장벽이나 다름없다. 인쇄출판 역시 산업이기에 자본의 논리가 작동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순수한 과학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기술에 대한 개발과 투자는 이익이라는 것으로 환원된다.

현재 인쇄출판계가 지속적으로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본의 논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과 산업은 필수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얻을 것이 없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자본이다. 자본의 논리가 싫든 좋든 지금은 자본의 논리가 시장과 산업을 철저하게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자본의 논리는 시장성 평가를 통해 미래에 확실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투자와 개발이 이루어진다.

지금의 인쇄출판계를 둘러싼 환경을 고려하면, 투자와 개발만이 작금의 인쇄출판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묻고 싶다. 그 동안 인쇄출판계는 무엇을 했는가? 변화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영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사고에 안주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투자와 개발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 동안 어떤 노력을 했고, 앞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지를 말이다. 전술한 것처럼, 지금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자본의 논리에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자본의 논리를 철저하게 이용할 필요가 있다. , 자본의 논리를 이용하여 인쇄출판계에 대한 투자와 개발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투자 가치를 찾아 그것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필자는 그러한 노력을 했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인쇄출판계, 권위를 세워야 한다

현재 인쇄출판계는 지나치게 위축되어 있다. 스스로에 대한 변화의 의지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나치게 어려움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변화되는 환경에 대처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소비자와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많은 기업들이 그러한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있다. 소비자와 시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환경에 와 있다. 인쇄출판계 역시 소비자와 시장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사양 산업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실제로 일부 인쇄출판인들은 인쇄출판계가 이제는 사양 산업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한 분위기가 인쇄출판계 전체는 아닐지라도 일부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변으로부터 형성된 낙인(stigma)을 스스로도 인정한 셈이다.

현재 인쇄출판계는 예전과 같은 권위가 없다. 문화를 선도하고 창출했던 예전의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의 자랑스러운 권위가 없다. 권위(authority)는 개인이나 조직, 혹은 관념이 사회 내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 담담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성원들로부터 널리 인정되는 것이다. 권위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므로 관념적이면서도 정신적인 것에 속한다. 더욱이 권위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갈 때 주변으로부터 널리 인정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낙인이라는 이름의 족쇄에 스스로를 채운 모습 속에서 인쇄출판인 스스로의 권위는 형성될 수 없으며, 나아가 스스로의 권위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주변으로부터 그 어떤 권위도 인정되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은 분명코 인쇄출판계나 인쇄출판인 모두에게 힘들고 어려운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예전의 자부심과 권위만큼은 스스로 저버려서는 안 된다.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을 이끌어내는 것 역시 권위가 제대로 세워질 때 가능하다. 그렇기에 지금의 어려움을 벗어나 예전의 긍지와 자부심이 가득한 문화선도자로서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권위를 다시금 세우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쇄출판인들은 그럴 자격이 충분함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월간 프린팅 코리아 2017년 12월호 통권 186호    

 
 

  프린팅코리아 2018년 10월호  









  오늘의 인기검색어
1. 2017
2. 인쇄
3. 한국
4. print
5. 박람회
뉴스·행사 기획·이슈 인터뷰·탐방 비즈니스·PR 학술·연재 글로벌트렌드 라이프 종료 시리즈물
정책/단체뉴스
업계뉴스
핫뉴스
행사
스페셜리포트
포커스
테마기획
분석
인터뷰
탐방
비즈니스인사이드
PR페이지
줌인
학술논문
세미나
전시회
오피니언
프린팅월드
월드뉴스
레저/건강
문화
생활속의 인쇄
세계의 인쇄인
이정식의 세계기행
21세기 키워드
역사속으로
등록번호 : 라00129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15길 12, 5층(서교동, 인쇄문화회관)
Tel : 02)335-5881 / Fax : 02)338-9801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임남숙
월간 프린팅코리아의 모든 콘텐츠를 무단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Home Top
Copyright ⓒ http://printingkorea.or.kr. All rights reserved.
Login